소비자인가 제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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概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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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내 입맛대로 고르고 주문하는 '소비자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여하는 주님의 만찬(성찬)도 혹시 쇼핑몰의 서비스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1. 소비자주의가 망가뜨린 성찬의 의미
현대인들은 예배와 성찬에 나아오며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예배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뭐지?"
"성찬 예식 때문에 예배가 너무 길어지지는 않을까?"
이런 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험료 납부'나 '자기계발' 같은 대상화된 소비로 전락시킵니다. 성찬은 내가 소비하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2. '당신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마르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삶을 '비타 파시바(vita passiva, 수동적인 삶)'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게으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동적인 주체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일하심을 받아들이는 '수납하는 삶'을 뜻합니다.
성찬은 내가 만들어 내거나 쟁취하는 경험이 아닙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를 통해, 떡과 잔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과 표징을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성찬을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성찬에 나아가는 것은 거기서 큰 보물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이 나의 것이 되고, 내 모든 악에 대항하는 확실한 보증이 되도록 먹고 마시라고 명하십니다." (루터, 대교리문답)
3. 소비를 넘어 소망으로
성찬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미래에 열릴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소망의 잔치입니다.
하나님은 성찬을 통해 우리의 거짓된 자아상을 부수시고, 그분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하십니다.
지나치게 능동적인 시대, 잠시 멈추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립시다. 성찬은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하는 가장 확실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
원문: 다니엘 에골드, 『성찬을 소비하다』 중
https://www.modernreformation.org/resources/articles/consuming-communion
신학적 한 걸음 더
이 글의 저자 다니엘 에골드는 루터교 전통에 서 있습니다. 루터교는 성찬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행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수납'을 강조합니다.
비록 성찬에 대한 세부적인 신학(루터교의 공재설 vs 개혁주의의 영적 임재설)은 교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성찬은 나의 만족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에골드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회복해야 할 제자도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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